압살롬의 아름다운 딸 이름이 다말 이다. 압살롬에 대한 구절에 왜 딸의 외모와 이름이 함께 언급될까?
그 이름과 그 외모는 압살롬의 여동생 다말, 그리고 그의 사건, 그리고 압살롬의 복수를 떠오르게 한다. 그러면서 독자에게 왜 압살롬이 떠나있었는지, 다윗이 다말의 일을 유야무야 넘어갔음을 상기시키는데, 압살롬을 돌아오게 하는 일에서도 다윗은 유야무야 하고있다.
요압에게 못이기는 듯이 압살롬을 불러들이지만 보지는 않겠다는 명령으로 또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지 않고 덮고 미루는 모습이다.
어떤 일은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해결해야 할때가 있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시간을 다투어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마음이 불편하여, 다시 끄집어 내기 싫어서, 사건을 바로 볼 능력이 없어서 등 여러 이유로 우리는 미루고 덮어둘 때가 많다. 당장에 별 탈이 없는것 같아서, 당장에 불편하지 않으려고, 더 갈등이 고조될까봐 두렵다는 등의 핑계를 대면서 조금씩 커져가고 깊어져 가는 패인 골을 보지 못한다.
내가 나 자신에게, 내 자식들에게, 내 남편에게, 내 부모님 들에게, 내 친구들에게, 내 주변인에게 그렇게 어떤 흠집이 깊이 패인 골이 되도록 덮어두고 미뤄두고 있진 않았나 생각해본다.
주님, 우리의 관계 가운데서 중재하시고 위로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쁨인 관계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때가 더 많습니다. 어제는 기쁨이었지만 오늘은 근심이 되거나 획복하기 어려운 관계가 되거나 끝내 포기하여 내버리는 관계가 되는 일도 있습니다. 주님 서로 사랑하라 하신 주님의 계명대로 살기를 소망하면서도 나와 가까이 있는 관계에서 소홀한 나의 약함 용서해 주시고 불쌍히 여겨 주세요. 관계를 늘 살피고 서로에게 기쁨으로 존재하도록 힘을 주세요. 오늘 하루 만나는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나의 생각과 입술을 주관하여 주시고 관계에 복을 주셔서 우리가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높이는 하루를 살게 허락해 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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